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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의 일상기록
[책 리뷰] 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댓글시인의 아름다운 시 모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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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쇳물 쓰지 마라(리커버)
‘제페토’라는 이름을 쓰는 누리꾼은 사람들에게 ‘댓글시인’으로 불리고 있다. 2010년 한 철강업체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용광로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망한 기사에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추모시가 그 이유였다. 그 시는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청년의 추모동상을 세우자는 움직임과 함께 이런 억울한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적 각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댓글시인 제페토는 그 이후에도 꾸준히 시 형식의 댓글을 남겼고, 누리꾼들은 그의 시를 캡쳐해 공유하기도 하고 일부러 그의 댓글을 찾아 들어가기도 했다.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는 댓글 세상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사유를 아름답고 고통스럽게 풀어낸 댓글시인 제페토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쓰인 그의 댓글 시와 개인 블로그에 올린 시를 엮은 책이다.
- 저자
- 제페토
- 출판
- 수오서재
- 출판일
- 2016.08.22

책리뷰: 그 쇳물 쓰지 마라 - 제페토 댓글시인
제페토를 아는가? 제페토는 '댓글시인'이라고 불리는 이로, 뉴스기사에 시 형식의 댓글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책 제목이 '그 쇳물 쓰지 마라'가 된 이유도 2010년 철강업체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용광로에 빠져 사망한 기사의 추모시 댓글을 달았던 제목이라고 한다. 댓글 시는 당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그의 댓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댓글시인 제페토는 다양한 기사들에 댓글로 시를 작성하였고, 댓글 시로 시작한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고 한다.
<그 쇳물 쓰지 마라> 책을 읽으며 제페토 댓글시인의 냉철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어떤 기사에서는 아픔과 소외된 이웃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시를, 어떤 기사에는 그냥 넘어 갈 수 있는 사소한 주제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시 의미를 되새겨 주는 시를 선물했다. 특별히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게 된 것은,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사 하나마다 짤막하게 의미를 부여하며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의미있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제페토 댓글시인은 지금도 활동을 하고 있을까? 인터넷으로 신문 기사는 잘 보지만, 최근 악플과 서로를 비방하는 댓글로 엉망이 되어 있는 뉴스 기사 댓글을 보지 않은게 오래된 것 같다. 앞으로도 제페토와 같은 많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댓글 작가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니다. 나부터 시작하자!

풍선을 위로하는 바늘의 손길처럼
모서리를 둥글게 깎는 목수의 마음처럼
# 시각장애 딛고 마음의 눈으로 시를 씁니다
만져지는 시란
어떤 느낌입니까
그 두텁고 무덤덤한 종이 위에
오돌토돌한 요철을 나열한 다음
느린 손끝으로 읽어내는 일 말입니다.
가을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라고 읽는 일
골목길에서 수없이 울었다, 라고 읽는 일
딸이 세상을 떠났다, 라고 읽는
그런 일 말입니다
손끝에 만져지는 슬픔이란 어떤 느낌입니까
혹시 잠 못드는 밤
명치끝에 만져지는 그것은
따님의 이름입니까
<명치>
# 한파 속 폐지 수집 노인
어찌 됐건
생을 마친 종이를 부활의 초입까지 나르는 일은
늙은이들의 몫이 되었다
언덕을 오르던 정오
말보로 상자는 납작해진 주둥이로
브라질 숲에서 왔노라 자랑을 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작에 고향을 잊은 노인은
의심스러운 저울에 무거운 시선을 보태느라
눈이 시렸다
영락없는 푼돈이지만
당분간 목숨은 그럭저럭 붙은 셈이다
장차 자신의 장례비를 외투에 넣고 돌아선 그는
곤궁한 처지를 푸념하는 대신
그깟 외로움 하나 견디지 못한
아들놈의 죽음을 나무랐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어째서 사람은 부활하지 않는가, 하고
<부활>
# "남는 밥 좀 주오" 시나리오 작가의 쓸쓸한 죽음
공복의 속 쓰림에
지새웠을 너의 밤이
순에 선하다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2월 중하순에는 밀린 돈들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전기세 꼭 정산해드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너를 알았다면
한창 맛있게 익어가는 김치
뜨거운 쌀밥 나누었을 텐데
끝내 너의 삶
해피엔딩은 아니었나 보다
부디 에필로그는 시네마 천국에서 웃는 얼굴로 천천히 페이드아웃 되기를
<그녀에게 천국을>
# 세상의 소금 된 '손 없는 소금장수'의 선행
짜디짠 소금장수라지만
씀씀이 푸짐했다
지뢰가 걷어붙인 두 팔로
온종일 땡볕 아래에서 수확한
눈부신 결정들은
소금이었을까
마음이었을까
항아리에 채워 넣고
한 일 년,
싱거워도 짜유, 짜유, 하며
아껴 먹어야겠다
결코 썩는 법 없이 오래갈 그 마음
<소금선생>
#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헤어질 대에는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
외출하는 주부처럼 쓸쓸한 창문을 닫고
뚝뚝 떨구던 것도
이제 그만 잠그자
혹여 잊은 말은 없는지
우산 돌려주듯 챙겨주고 돌아설 때에
어디서 마른바람이 불어와
선명한 추억이 몇 장
가로수 길에 떨어지면
망설이지 말고
멀어져 가는 그의 뒷주머니에
슬며시 넣어 보내자
그러고도 오랫동안 아프겠지만
서두르지 않는 이별이
아픔은 덜하다
그렇다고 치자
<이별 요령>
# 62세 치매 아내 10년째 웃음으로 돌보는 박종팔 씨
좋을 대로 부르세요
콩이라시면 콩이고
팥이라시면 팥인 거지요
아들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당신이 좋아하는 물고기 이름을 붙여주면 되고요
딸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당신이 좋아하는 꽃 이름을 붙여주면 되지요
내 얼굴마저 기억나지 않는 날에는
못 이기는 척
내미는 손 잡아주면 기쁘겠고요
오후에는 바리바리 싸 들고 소풍 나가서
매운 콩은 고추장 찍어 먹고
아삭한 팥으로 쌈 싸 먹으며
너무 늦게 사랑하는 법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줄까 합니다
<당신을 위하여>
# '자식 상대 소송하느니' 70대 노모 안타까운 사연
봄날에는 떠나지 말자
어린 순경 코 찌르지 않게
동짓날 새벽에 떠나자
더웠던 양
홑이불 제쳐놓고
창문 활짝 열어놓고
보일러에는 열흘 치 기름을 남겨놓자
노인네, 돈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 듯하게
머리맡 일기장에는
살 만큼 살았다는 양
복에 겨운 푸념을,
제일 뒷장에는
복지사 미안해하지 않게
천상병의 귀천을
그러나 쓰다 말자
꼭 떠나려던 것은 아닌 듯하게
그런대로 세상 살 만했던 양
새끼들 욕먹지 않게
<벼랑에서>
# 눈이 오네
내린다는 말보다
온다는 말이 좋다
너도 눈처럼
마냥 오기만 하여라
<눈이 오네>
# 새엄마 폭행, 소풍 가고 싶다던 여덟 살 딸 때려 숨지게 해
아름다운 이 세상이
소풍이었노라고
어느 유명한 시인은
근사한 말을 남기고 갔는데
아니다.
아니고,
그늘진 풀잎 끝에
잠시 이슬처럼 맺혔다가
소풍 없이 떤난
그런 아이는 있었다.
가서 시인에게 말하여라.
사람이 사람 손에 스러지는
이런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노라고.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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